은평한옥마을, 한복·박물관 이후 갈 곳 없다

은평한옥마을, 한복·박물관 이후 갈 곳 없다

수도권 최대 규모 신(新)한옥 전용 주거단지인 서울 은평한옥마을. 외국인 관광객은 늘었지만 한복 대여와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더 할 일이 없다. 북촌·전주한옥마을과 비교해 콘텐츠 공백과 관(官) 주도 대안을 짚는다.

은평한옥마을 전경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은평한옥마을. 156필지 6만 5,500㎡로 처음부터 한옥으로만 계획·조성한 신(新)한옥 전용 주거단지로는 수도권 최대 규모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의 은평한옥마을이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북한산 자락의 풍경과 한적한 골목이 매력이라는 평가다. 신(新)한옥만으로 계획·조성한 단지로는 수도권 최대 규모인데, 정작 머무를 만한 체험 콘텐츠는 빈약하다. 한복 대여와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더 할 일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은 늘었지만 머무는 시간은 짧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 외래관광객은 1,894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2019년 1,750만 명을 넘어선 수치다. 은평한옥마을에도 그 흐름이 닿았다. 은평구 발표를 보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외국인 관람객은 2023년 1,378명에서 2024년 3,367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비율도 2.01%에서 4.95%로 뛰었다.

문제는 체류시간이다. 마을을 찾은 외국인 대부분은 사진을 찍고 한 시간 안팎 머무른 뒤 떠난다. 더팩트 보도에서 한복대여점 직원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빌리러 많이 온다. 가장 많은 날은 하루에 20명까지도 온다.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고 다음은 필리핀 관광객”이라고 전했다. 거꾸로 말하면 사진 촬영용 대여를 빼면 마을에서 돈을 쓸 곳이 한정적이라는 의미다. 머무는 시간이 짧으면 지역 소비도 적다.

은평한옥마을 골목 은평한옥마을 골목. 대부분이 사유지인 신축 한옥이라 내부 관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한옥 단지로는 최대, 체험은 두 가지뿐

은평한옥마을은 2014년 12월 조성된 신(新)한옥 전용 주거단지다. 부지 65,500㎡에 156필지가 들어섰다. 서울한옥포털에 따르면 북촌은 가회동·계동·삼청동·원서동·재동·팔판동 일대 약 107만㎡에 한옥 약 900채가 분포한다. 전주한옥마을은 풍남동 일대 700여 채 규모다. 권역 전체 면적이나 한옥 호수로 따지면 북촌과 전주가 단연 크다. 다만 처음부터 한옥만으로 도시계획을 잡아 한꺼번에 분양한 단일 신축 단지로 보면 은평이 가장 크다. 그만큼 체험 콘텐츠를 깔 여지가 큰 공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단지에 콘텐츠가 따라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래 표는 세 마을의 핵심 지표를 정리한 것이다.

서울·전주 3대 한옥마을 비교

전주는 한국관광 100선에 7회 연속 선정됐다. 마을 안에 경기전과 어진박물관, 전주대사습청, 부채문화관, 완판본문화관이 들어차 있다. 한복 체험은 기본이고 한지·도자기·서예·부채 만들기·전통주 빚기·예절 체험까지 가능하다. 상설 공연만 수요·토요로 나뉘어 연중 돌아간다. 전주시 빅데이터 분석 결과 2023년 한옥마을 방문객은 1,536만 명으로 역대 최대다. 북촌은 거주민 6,100여 명이 살면서도 종로구 추산 연 644만~664만 명이 찾아 오버투어리즘 논란이 큰 곳이다. 종로구는 2024년 11월부터 레드존(북촌로 11길 일대 3만 4,000㎡)에 오후 5시~다음 날 오전 10시 출입 제한을 시범 운영했고, 2025년 3월 1일부터는 위반 시 10만 원 과태료를 본격 부과하고 있다.

반면 은평한옥마을의 상시 체험은 너나들이센터의 무료 한복 대여,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전시 정도다. 박물관 관람객은 연 6만 명 수준이다. 북촌의 약 100분의 1, 전주의 약 250분의 1 수준이다.

외국인 관람객 추이

한적함이 매력이라는 평가의 함정

외국인 관광객들은 은평한옥마을의 매력으로 북촌보다 조용하다는 점을 꼽는다. 한적함이 매력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이 한적함은 의도된 결과가 아니다. 마을의 절대 다수가 주민 거주용 사유지인 탓에 내부 관람이 막혀 있고, 들어가서 할 거리가 마땅치 않은 데서 비롯된 부산물에 가깝다. 한적함을 매력으로 박제하면 지역 경제는 카페 매출 이상으로 커지기 어렵다.

전주는 다르다. 전주한옥마을 역시 임대료 상승과 상업화 논란을 겪지만, 거리 자체가 체험·먹거리·공연으로 채워져 있다. 전주시는 한옥마을 일대를 체류형 관광지로 운용한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은평은 KTX도 필요 없는 도심 한복판인데 평균 체류는 두 시간 안팎으로 추정된다. 너무 짧다.

전주한옥마을 한복 체험 전주한옥마을의 한복 체험 인파. 공예·예절·음식·전통놀이 등 상시 프로그램만 수십 종이다.

관(官)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

은평한옥마을의 한계는 민간이 자생적으로 풀기 어렵다. 156필지 대부분이 개인 사유지로 분양된 주거 단지여서 상업시설 입점에 제약이 크다. 한옥 한 채 가격이 30억 원을 호가하는 부동산 시장이 형성된 상황에서, 민간 공방이나 체험업체가 자력으로 진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관이 주도해 공유 공간을 확보하고 콘텐츠를 깔아야 한다.

다행히 행정 인프라는 기존에 다져둔 것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15년 진관동 한옥마을과 북한산성마을 일대 약 63만㎡를 ‘북한산 한문화체험특구’로 지정했다. 280억 원을 투입해 너나들이센터, 진관사 문화체험관 등이 조성됐다. 은평구는 지난해 한국관광정책연구학회 주관 ‘2025 대한민국 관광정책대상’ 문화관광자원 부문 대상도 받았다. 제도와 명분은 있다. 다음 단계가 더디다는 게 문제다.

연구자들의 처방은 일찍부터 나와 있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송여정과 국민대 행정대학원 김연희가 2017년 한국지역문화학회 학술지 「지역과문화」에 실은 「은평한옥마을의 문화관광자원화 연구」는 체험·교육·치유라는 세 축을 제시했다. 한옥살이 체험, 공예품 저잣거리, 박물관 연계 교육, 북한산 민담 스토리텔링, 진관사·삼천사 연계 치유 콘텐츠 등이다. 이 처방은 9년이 지난 지금도 대체로 미실현 상태다.

대안 매트릭스

위 표는 영역별 공백과 가능한 관 주도 대안을 정리한 것이다.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입주할 수 있는 공방 거리, 상설 놀이마당, 진관사 사찰음식·전통주 체험관, 북한산 민담 기반 마당극, 야간 미디어아트, AR 한옥 내부투어 앱, 구(區) 인증 한옥스테이 브랜드, 둘레길 연계 힐링 패키지 등이다. 핵심은 흩어진 자원을 한 줄로 꿰는 일이다.

북촌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북촌의 사례는 반면교사다. 북촌은 콘텐츠보다 관광객이 먼저 몰린 곳이다. 거주민이 떠나고 임대료가 뛰었으며, 결국 출입 제한이라는 강수까지 동원됐다. 은평한옥마을은 다행히 그런 단계는 아니다. 거꾸로 콘텐츠를 먼저 깔 시간이 남아 있다. 156필지의 상당 부분이 비상업 주거지로 묶여 있다는 제약은 오버투어리즘을 막는 완충재 역할도 한다. 주민 정주권을 지키면서도 체험형 단지로 키울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뜻이다.

은평구는 지난해 ‘2025 대한민국 관광정책대상’ 수상을 계기로 한옥마을 일대 관광 활성화 방안을 다듬는 중이다. 구상이 보고서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한옥마을 안쪽의 콘텐츠 밀도부터 올려야 한다. 한적함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머무를 이유를 만드는 일은 모순이 아니다. 일본 시라카와고나 영국 코츠월즈의 사례처럼 정주권·콘텐츠·관광이 공존하는 모델은 이미 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을 찾은 외국인은 한 해 3,367명이다. 이 숫자를 두 배로 늘리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이들이 한복 대여와 박물관 관람 외에 머물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그 답은 다시 콘텐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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