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기피, 면책만으론 못 푼다

현장체험학습 교사 면책 강화 방안의 핵심과 한계를 짚고, 미국·영국·일본 사례와 함께 수학여행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보완 과제를 정리했다.
정부가 5월 28일 현장체험학습 교사 면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사고가 나도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교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면책 하나로 수학여행이 되살아날지는 미지수다. 교사를 망설이게 하는 부담이 형사책임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면책은 받았지만, 나머지 부담은 그대로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학교안전법 개정이다. 고의·중과실이 아니면 교사의 민·형사 책임을 면제한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형법 제268조)에서도 뺀다. 지금은 교사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음을 인정받아야 면책되지만, 법이 바뀌면 수사기관이 고의·중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로 바뀐다. 정부는 내년 새 학기 적용을 목표로 한다.
기피의 방아쇠는 한 건의 사고였다. 2022년 11월 강원 속초의 한 테마파크에서 현장체험학습 중이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졌다. 2025년 2월 1심은 인솔 담임교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로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해 11월 2심에서 선고유예로 감경돼 교직은 지킬 수 있게 됐지만, 유죄 판단 자체는 유지됐다. 이후 “교사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라는 불안이 번졌다.
문제는 교사의 부담이 처벌 공포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출발 전 버스기사 음주 측정, 차량 점검, 안전 서류 확인을 교사가 직접 한다. 숙박 일정도 매일 챙긴다. 안전요원이 와도 보조 인솔에 그치고, 사고가 나면 1차 대응은 교사 몫이다.
출발 전 버스 점검과 음주 측정까지 교사가 직접 챙기는 경우가 많다.
비용도 걸림돌이다. 안전 기준이 높아지며 단가가 오르고, 그 부담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간다. 교육청 지원은 지역 편차가 크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는 예약까지 마친 수학여행을 위약금을 물고 취소했다.
수련회·수학여행 실시율 추이 (자료: 교육부)
실시율은 2024년 잠깐 올랐다가 지난해 다시 꺾였다. 특히 초등학교는 48.1%까지 내려갔다. 지역으로 보면 격차가 더 선명하다.
지난해 초등학교 실시율은 수도권에서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자료: 교육부).
지난해 초등학교 실시율은 대전 4.0%, 서울 7.7%, 경기 9.7%, 인천 13.6%에 그쳤다. 수도권은 사실상 멈춰 섰다.
해외는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두지 않는다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책임의 위치’다. 미국은 사고 책임을 개별 교사가 아니라 학교, 즉 교육구에 묻는다. 교사 개인이 걸리는 경우는 중과실에 한정된다. 영국도 보건안전청(HSE)이 안전 의무의 주체를 교사가 아닌 고용주, 곧 학교라고 못 박는다. 일본은 한발 더 나간다. 일본스포츠진흥센터(JSC)가 수업·소풍·수학여행 중 다치거나 숨진 학생에게 과실을 따지지 않고 의료비와 위로금을 준다. 비용은 국가·지자체·학부모가 나눠 낸다. 빠른 보상이 소송으로 가는 길목을 줄인다. 한국이 면책 다음에 고민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교원단체가 국가소송책임제를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의 ‘인증 업체’ 모델이 주는 힌트
영국은 인증받은 외부 기관을 쓰면 교사가 위험성 평가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활성화 아이디어는 또 있다. 영국에는 ‘교실 밖 학습 품질 인증(LOtC Quality Badge)’이 있다. 박물관, 야외 캠프, 여행 업체가 교육의 질과 안전관리를 함께 심사받아 국가가 인정하는 인증을 받는다. 교사가 인증 업체를 고르면 위험성 평가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지자체 점검도 상당 부분 갈음된다. 행정 부담이 확 줄어든다. 한국에도 비슷한 씨앗이 있다. 이번 방안에 담긴 ‘패키지 상품’이다. 여행사가 이동·숙식에 더해 안전요원 배치, 차량 점검, 음주 측정, 숙박 안전까지 통합 책임지는 방식이다. 다만 아직은 입찰 제안서에 권고하는 수준에 머문다. 영국처럼 국가 인증과 품질 기준으로 묶어야 교사가 믿고 맡길 수 있다.
면책 다음에 필요한 것들
정리하면 면책은 출발선일 뿐이다. 활성화로 가려면 몇 가지가 더 따라붙어야 한다. 먼저 사고 책임을 교사 개인에서 학교·교육청으로 옮기고, 다투기 전에 보상을 끝내는 무과실 구조를 검토할 만하다. 비용 지원도 지역과 학교 규모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맞춰 학부모 부담을 낮춰야 한다. 버스 점검이나 음주 측정 같은 안전 실무는 교사가 아니라 전문 업체와 인증 인력이 책임지는 쪽이 맞다. 사고가 터졌을 때 쏟아지는 악성 민원에서 교사를 지켜 줄 장치도 빠지면 안 된다.
결국 핵심은 교사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책임도, 비용도, 안전 실무도, 민원도 학교와 국가가 함께 진다는 신호가 분명해야 교사가 다시 교문 밖으로 나선다. 법 개정은 하반기 국회를 거쳐 내년 상반기 시행이 목표다. 그 사이 면책 기준을 어떻게 다듬고 비용·인력·민원 대책을 얼마나 채우느냐가, 아이들의 봄소풍을 되돌릴 수 있을지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