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투표 당선 513명, 다시 불붙은 기초의회 존폐론

무투표 당선 513명, 다시 불붙은 기초의회 존폐론

6·3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이 513명. 기초의회 무용론부터 폐지·대안 논의까지 데이터로 따져봤다. 주민참여예산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6월 3일 지방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국회의원 14곳을 다시 뽑는 보궐선거도 같이 치른다. 거리는 현수막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막상 우리 동네 기초의원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기억에 남는 건 해외연수 외유, 갑질, 돈공천 같은 뉴스뿐이다. 그래서 또 나온다. “기초의회, 꼭 있어야 하나?” 이 글은 그 질문을 숫자로 따져본다.

투표도 하기 전에 513명이 당선됐다

먼저 이번 선거의 숫자가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 중앙선관위가 5월 16일 밝힌 후보 등록 결과, 전국에서 513명이 투표 없이 당선을 확정했다. 후보가 정원만큼만 나와 경쟁 자체가 없던 선거구가 307곳이다. 기초단체장 3명, 광역의원 108명, 기초의원 305명, 비례 기초의원 97명이다. 2022년의 508명을 넘어 역대 가장 많은 규모다. 표를 받기도 전에 당선자가 정해진 셈이다.

2026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 현황 표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26.5.16 후보 등록 결과)

투표 없이 당선된 513명의 구성 막대그래프

수도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구 51만 명의 경기 시흥에서는 국민의힘이 후보를 못 구해, 1995년 지방선거 도입 이후 처음으로 시장 후보를 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대 양당이 이길 곳에만 사람을 내고, 질 곳은 비운다. 그러니 경쟁이 사라진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는 동네에 나설 사람도 조직도 없어 출마해도 승산이 없으니 후보가 안 나온다며, 여러 정당이 겨룰 수 있게 선거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쟁이 없으면 검증도 없다. 513명은 그 빈자리의 크기다.

해외연수·돈공천이 만든 불신

사람들이 등을 돌린 데는 이유가 있다. 해마다 외유성 해외연수가 도마에 오른다. 평화뉴스 분석을 보면, 대구 9개 구·군 의회가 올해 잡은 해외연수 예산은 4억8,148만원으로 작년보다 오히려 늘었다. 연수비를 부풀린 혐의로 의원과 직원이 검찰에 넘겨진 와중에도 예산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천을 둘러싼 돈 문제도 터졌다. 한 지역 신문은 돈공천 사건을 계기로 정당이 후보를 찍어주는 공천 제도를 아예 없애자고 주장했다. 이유는 이렇다. 지금은 주민이 아니라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이나 지역 당협위원장이 후보의 운명을 정한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인 곳에선, 후보가 주민이 아니라 공천권자 눈치만 본다는 것이다.

겸직도 오래된 문제다.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의원은 다른 직업을 병행할 수 있다. 평소 자기 사업을 하다 회의 때만 의원으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이해가 충돌할 때다. 자기 식당에 업무추진비를 쓰거나, 개발 관련 일을 하면서 관련 위원회에 들어가 있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시민단체가 전국 226개 의회의 겸직 자료를 모아 공개하기도 했다.

그래도 없애기엔, 맡긴 돈이 너무 크다

비판은 거세지만, 기초의회가 쥔 권한은 작지 않다. 기초의회는 예산을 심의하고, 조례를 만들고, 단체장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한다. 우리나라는 일을 집행하는 사람(단체장)과 감시하는 곳(의회)을 따로 둔다. 의회는 견제 담당인 셈이다.

여기서 옹호론이 나온다. 기초자치단체는 매년 수천억, 많게는 수조 원을 쓴다. 그 큰돈을 단체장 한 사람한테만 맡길 수는 없다. 새는 돈을 막고, 소외되는 주민이 없는지 보는 게 의회의 일이다. 1991년 지방의회가 되살아난 지 30여 년, 전국 226개 의회에 기초의원만 2,988명(2022년 선거 기준)이 활동하는 이유다.

다만 작은 동네에선 사정이 다르다. 규모가 작은 지역은 다룰 행정도, 예산도 적어 사고가 나도 크지 않다. 그래서 작은 곳까지 의회가 꼭 필요하냐는 의문이 반복된다. 큰 도시냐 작은 군이냐에 따라 의회의 쓸모가 갈린다는 얘기다.

일하고 싶어도 회의 일정에 떠밀린다

그럼 의원들은 견제를 열심히 할까. 경기도 5개 대도시 의원 124명을 조사한 연구(미래정치연구)가 있다. 절반이 넘는 53.2%가 “단체장 견제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답했다. 마음은 그런데, 정작 시간이 없었다. 본회의와 위원회, 예산 심의 같은 의무 회의가 시간을 다 잡아먹기 때문이다. 주민을 더 만나고 싶어도 일정에 떠밀린다. 연구진은 결론을 이렇게 냈다. 의원 개인의 의지보다, 짜여진 일정과 재선 부담이 행동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용론의 책임을 의원 개인 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여론은 “수도 월급도 줄이자”

민심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난해 한 조사 결과가 또렷하다. 의원 수를 “줄이자”는 응답이 50.1%로, 지금대로 두자(32.2%)나 늘리자(8.6%)를 크게 앞섰다. 줄이자는 이유로는 “역할이 부족하고 믿음이 안 간다”가 49.5%로 가장 많았다. 월급에 대한 시선은 더 차갑다. 의정비를 낮추자는 응답이 64.3%였고, 아예 무보수 명예직으로 바꾸자는 의견도 27.4%였다.

지방의원 평균 의정비 표 자료: KNN 보도(지난해 조사 기준)

광역의원·기초의원 평균 의정비 비교 막대그래프

다만 같은 조사 안에 힌트도 있다. 사람들은 ‘폐지’보다 ‘손질’을 원했다. 수를 줄이고, 월급을 조정하고, 일부는 명예직으로 돌리자는 쪽이 더 많았다.

주민참여예산은 대안이 될까

그럼 의회 대신 주민이 직접 예산을 챙기면 어떨까. 실제로 그런 제도가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다. 서울시는 지방재정법을 근거로 2012년부터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이 사업을 직접 제안하고 고르는 방식이다. 좋은 취지다. 하지만 의회를 대신하긴 어렵다.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회는 단체장이 짠 예산을 깎고 막는 ‘견제’ 장치다. 주민참여예산은 “이런 데도 써달라”고 보태는 ‘참여’ 통로에 가깝다.

다루는 돈의 크기부터 비교가 안 된다. 2025년 서울시 예산은 48조1,144억원이다. 그런데 같은 해 시민참여예산은 500억원에 그쳤다. 전체의 약 0.1%다. 그마저도 실제 선정된 사업은 91개, 약 397억원에 머물렀다. 1,000원 중 1원으로 나머지 999원을 감시하라는 셈이다. 전체 살림을 견제하기엔 턱없이 작다.

서울시 예산 대비 시민참여예산 비중 와플 차트

게다가 주민참여예산은 결국 행정이 판을 깐다. 위원 구성도, 사업 채택도 집행부 손에 있다. 감시 대상이 감시 무대를 차려주는 셈이라, 단체장을 정면으로 견제하기엔 구조적으로 약하다. 형식적으로만 굴러간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민참여예산이 커질수록 그 과정이 제대로 굴러가는지 또 누군가 봐야 한다. 그 역할도 결국 의회로 돌아온다. 정리하면 주민참여예산은 의회를 대신하는 ‘대체재’가 아니라, 의회가 놓치는 빈틈을 메우는 ‘보완재’다.

없애는 게 답일까, 고치는 게 답일까

폐지는 통쾌하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감시하는 곳을 없애면, 수천억 예산을 단체장 혼자 주무르게 된다. 감시가 사라진 자치는 부패와 낙후로 가기 쉽다. 돈 문제도 남는다. 지방 살림이 기초연금·무상보육 같은 중앙정부 복지 부담까지 떠안아 늘 빠듯하다는 지적은 오래됐다. 의회를 없앤다고 이게 풀리지는 않는다.

무투표 문제는 우리만의 일도 아니다. 일본도 무투표 당선이 2007년 7.8%에서 2019년 12.4%로 꾸준히 늘었다. 자치 역사가 더 긴 나라도 경쟁 실종은 못 풀었다. 즉, 기관을 없애는 것보다 경쟁을 되살리는 게 먼저라는 뜻이다.

일본 통일지방선거 무투표 당선 비율 추이

그래서 해법은 ‘폐지’가 아니라 ‘수선’으로 모인다. 핵심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공천권을 누가 쥘 것인가. 지금처럼 국회의원이 쥐면 의원은 주민이 아니라 위를 본다. 그래서 정당 공천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온다. 반대편에선 공천을 없애면 소수 정당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며 신중하자고 한다. 둘째, 후보가 한 명뿐일 때 어떻게 거를 것인가. 단독 후보라도 찬반 투표를 하고, 공보물과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 최소한의 검증 기회를 주자는 안이 거론된다. 셋째, 의원 수와 월급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인구가 주는 작은 군은 수를 줄이고, 일부는 명예직으로 돌리자는 구상이다.

정리하면, 진짜 문제는 기초의회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누구를, 어떻게 뽑느냐다. 작은 군이라면 통폐합이 답일 수 있다. 그러나 큰돈이 오가는 대도시 자치구에서 감시 기능을 통째로 들어내는 건 더 큰 구멍을 만든다. 무투표 513명은 “의회를 지워라”가 아니라 “경쟁이 되게 판을 다시 짜라”는 신호에 가깝다. 결국 동네 일은 동네 사람이 제일 잘 안다. 감시의 눈을 거두는 순간, 그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자료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보 등록 결과(2026.5.16), 경향신문, 문화일보, 헤럴드경제, 평화뉴스, KNN, 서울시·서울시의회 예산 자료, 미래정치연구. 무투표 당선자 수는 후보 등록 마감 기준 잠정치로 선거일까지 변동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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