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국가책임제 입법 시동…언론 보도 관행도 도마

헌법재판소가 보호의무자 강제입원의 위헌성을 짚은 지 10년. 보호의무자 입원 폐지 법안 발의와 정부 정책포럼·사법 학술대회를 거쳐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이 확정됐다. 자극적 헤드라인과 가족 책임 떠넘기는 보도 관행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보호 책임을 가족에게 떠맡겨온 한국 사회의 구조가 입법·학계·시민사회의 동시 압박을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016년 9월 보호의무자 강제입원 조항(구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해 재판관 9인 전원 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10년이 다 돼 간다. 그러나 후속 입법인 정신건강복지법에서도 보호의무자 제도는 요건만 강화한 채 살아남았다. 2025년 9월 이를 폐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같은 해 12월 정부 정책포럼과 사법 학술대회가 잇따랐고, 2026년 3월에는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이 확정됐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환자와 가족에게 책임을 돌려온 보도 관행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이 흐름의 배경에 있다.
“사이코패스”·”시한폭탄”·”테러행위”…자극 헤드라인 반복
2021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조현병회복협회 ‘심지회’가 5개월간 진행한 언론 모니터링에서 111건의 차별·혐오 보도가 적발됐다. 지적된 헤드라인은 ‘조현병 환자 〈사이코패스〉 성향 막으려면…’,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조현병 환자’, ‘조현병 환자 흉기난동…3명 부상’ 같은 표현이었다. KBS·MBC·JTBC가 각 9건으로 가장 많았다. 조현병 형을 30년 넘게 돌봐온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연구원조차 “치료를 거부한 환자는 분명히 위험하다”고 말하는데, 보도는 ‘시한폭탄’이라는 단어로 그 사실을 가려왔다.
이런 비판을 수용해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은 2022년 4월 ‘정신질환 보도 가이드라인 1.0’을 제정했다. 자극적 표현 자제, 제목에 정신질환 언급 최소화, 정신질환과 범죄의 인과 단정 금지 등 5개 원칙을 담았다. 그러나 2023년 여름 신림역·서현역 흉기난동 보도에서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윤희근 당시 경찰청장은 서현역 사건을 “사실상 테러행위”로 규정했고, 다수 매체는 ‘묻지마’와 ‘조현병’을 헤드라인 전면에 배치했다. 살인 예고 글이 전국에서 8월 11일까지 315건 접수돼 119명이 검거됐다. 대한조현병학회는 8월 6일 성명에서 “가해자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조현병 증상 때문에 범죄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학계 분석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김태형 등이 2024년 ‘사회과학연구’에 실은 논문은 가이드라인 발표 전·후 1년치 일간지 기사 88건을 비교한 결과 5개 원칙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예방·회복 가능성 정보 명시’ 원칙의 준수율은 전·후 모두 0.0%였다. 가이드라인은 2024년 7월 1.1로 개정됐다. 위반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같은 해 7월부터는 한겨레가 정신의료기관 내 격리·강박 사망 사건을 연속 보도했다. 춘천 예현병원에서 양극성정동장애 환자가 12일간 입원 중 251시간 50분을 침대에 묶여 있다가 숨진 사건이 출발점이었다. 부천·서울·인천에서 같은 유형의 사망이 잇따랐고, 인권위는 2024년 12월 전국 20개 정신의료기관 방문조사에 착수했다.
자정 노력과 재발이 한 매체 안에서 반복되는 사례도 있다. 시사저널은 2019년 7월 ‘조현병 환자 괴롭히는 5대 가짜뉴스’ 기획에서 “조현병 환자 범죄, 전체의 0.04%에 불과”라며 자체적으로 낙인 보도를 반성했다. 그러나 2026년 3월 4일 같은 매체는 「경찰 “‘강북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 사이코패스로 판명’”」이라는 표제로 보도했다. 같은 날 MBC·머니투데이 등 다수 매체도 ‘사이코패스’를 표제에 노출했다. 가이드라인 1.1이 자제를 권고한 진단명 표제 노출이다.
“엄마는 왜 우리만의 책임인가”…가족에게 떠넘긴 보도들
2020년 23년 넘게 조현병 딸을 돌봐온 60대 친모가 약 복용을 거부하던 36세 딸을 살해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와 보호의 몫 상당 부분을 국가와 사회보다는 가정에서 감당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결과를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적었다. 친모는 2021년 12월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사건 직후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가족 모두가 피해자”라며 사회 책임을 함께 고민하자고 밝혔다. 그러나 다수 매체는 사건을 ‘비정한 친모의 살해’ 프레임으로 다뤘다.
비슷한 사건은 계속 반복됐다. 다른 결을 보여준 보도도 있다. 2024년 10월 세계일보 5부작 ‘망상, 가족을 삼키다’는 최근 10년치 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직접 분석해 ‘가정파괴 부르는 보호의무’의 구조를 정면으로 다뤘다. 정신질환 자녀의 부모 살해·미수는 매년 20건 이상 발생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2021년 7월 양극성정동장애 환자가 일으킨 인천 화재 사건에서 보호의무자인 부친의 손해배상 책임을 한정적으로 인정했다(대법원 2018다228486). 세계일보 기획 보도는 인정된 배상액을 1,550만 원으로 전했다. 가족이 치료 책임을 넘어 환자가 일으킨 피해의 배상 책임까지 떠안는 구조다. 그러나 이런 구조를 정면으로 다룬 기획 보도는 ‘비정한 가족’ 프레임을 답습하는 다수 보도 사이에서 여전히 소수다.
범죄·자살 통계가 보여주는 사각지대
경찰청 범죄통계 기준 2022년 정신장애 범죄자는 9,875명, 전체 범죄자의 0.7%다. 2021년 8,850명에서 1년 만에 약 12% 늘었다. 강력범죄 567건, 정신장애 범죄자 중 강력범죄 비율은 0.6%로 일반의 0.17%보다 약 3배 높다. 전과 보유 비율은 65.8%다. 발생률은 낮지만 재범은 잦다. 대한조현병학회가 인용한 2016년 조사로 보면 그림이 더 입체적이다.
조현병 환자의 ‘전체 범죄율’은 비조현병 인구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살인·방화 등 강력범죄로 좁히면 양상이 정반대다.
국립법무병원 입소자의 절반이 조현병 환자이고 그중 43.3%가 살인죄였다. 그러나 노충래·안성훈 등 국내 연구진은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 절대다수가 첫 치료 이전에 발생’하고 ‘치료 이후 범죄 위험성은 94% 이상 감소한다’고 보고했다. 위험 변수는 ‘조현병’이 아니라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이다.
자살 지표에서 한국은 OECD 최악이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5’ 기준 정신질환자 퇴원 후 1년 내 자살률은 회원국 1위다.
퇴원 직후 1년이 가장 취약한 구간이다. 한국은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사망자 약 1만 4,000명 중 3분의 2가 정신과 진단 경험을 가졌다고 짚었다.
정부 첫 실태조사가 드러낸 가족의 고통
보건복지부는 2023년 9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정신질환자 및 가족지원 서비스 확충을 위한 실태조사’를 처음 실시해 8월 22일 결과를 발표했다. 정신질환자 1,087명, 가족 995명이 대상이다.
정부가 처음으로 정신질환자 가족의 일상과 정신건강을 수치로 확인한 조사다.
가족 우울장애 유병률 38%는 일반 국민(남 3.9%·여 6.1%)의 6~10배다. 김영희 씨는 가톨릭의대 출신이다. 의사의 길과 평범한 직장을 모두 포기했다. 2021년 대한조현병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그는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조현병 환자의 절대다수는 치료를 방치하거나 받지 못한 상태”라고 단언했다. 2024년 MBC 인터뷰에서는 “눈 뜨면 케어 시작, 눈 감으면 케어 끝”이라고 호소했다.
입법·정책으로 옮겨붙은 논의
2025년 9월 25일 김예지 의원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골자는 세 가지다. 보호의무자의 보호의무 조항 삭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과 동의입원 폐지, 행정입원과 입원적합성심사 제도 보완이다. 동의입원은 ‘퇴원 시 보호의무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실상 강제입원으로 전환되는’ 악용 사례 때문에 함께 폐지 대상에 올랐다. 2022년 기준 전체 비자의입원 2만 9,195건 중 보호입원이 85%였다. 2024년에도 그 비율은 74%로 여전히 높다. 보호의무자제도는 서구권에 애초에 없었고 동아시아에서도 한국과 중국에만 존치된다.
다만 대안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린다. 대한조현병학회와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2021년 ‘조현병 국가책임제’의 한 축으로 준사법입원제 도입을 제안했다. 김 의원실은 “우리나라 판사 1인이 담당하는 사건 수가 해외보다 2~5배 많아 형식 심사로 흐를 우려”를 들어 사법입원제에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당사자 단체는 사법입원제 자체에 대해 “회전문 현상을 야기해 대안이 될 수 없다”며 반대한다.
12월에는 정부 포럼과 사법 학술대회가 잇따라 같은 결론에 닿았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의 ‘2025 정신건강정책포럼’(12월 12일)에서 이상원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정신건강은 우리 사회가 우선순위를 갖고 추진해나가야 하는 핵심 과제”라고 못 박았다. 사법정책연구원과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닷새 뒤(12월 17일) ‘정신적 장애와 사법’ 공동 학술대회에서 사법입원제와 입원적합성심사 개선을 핵심 의제로 다뤘다. 2026년 3월 27일에는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2026~2030)’을 확정·발표했다.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를 13곳에서 17곳으로 늘리고, 급성기 집중치료병상은 391개에서 2030년까지 2,000개 수준으로 확충한다.
미국·영국의 국가책임 모델
해외는 이미 국가책임 체계로 작동한다. 미국은 강제입원을 법원이 사후 승인한다. 영국은 정신건강심판원이 사전 심사를 맡고 정신보건법의 ‘퇴원 후 케어’ 조항으로 강제입원 환자가 퇴원하면 지역사회 감독치료를 의무화한다. 호주도 정신건강심판원 모델을 운영한다. 영국과 호주는 매일 전문가가 환자 가정을 방문하고, 투약을 거부하면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제공한다. 미국 일부 주는 정신건강법원 프로그램으로 법원·경찰·지역사회복지관이 역할을 분담해 재범률과 사회적 비용을 동시에 낮춘다.
언론은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은 위험하다’는 사실과 ‘치료받는 조현병 환자의 전체 범죄율은 비조현병 인구의 4분의 1’이라는 사실, ‘치료받으면 범죄 위험성이 94% 이상 감소한다’는 사실을 함께 다뤄야 할 책임이 있다. 현재 보도는 첫 번째 사실만 ‘공포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가족이 더 일찍 신고했더라면’, ‘부모가 약을 챙겨 먹였더라면’이라는 어법은 국가 시스템의 부재를 가족 도덕의 실패로 환원한다. 헌법재판소가 보호의무자 강제입원의 위헌성을 짚은 지 10년이 다 됐다. 시군구별 정신응급병상, 합동대응센터 인력, 공공 비자의 호송 체계, 퇴원 후 지역사회 케어 예산이 함께 따라붙어야 ‘국가책임 정신건강 체계’가 실제로 작동한다. 가족과 환자를 사각지대에 방치한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치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