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만찬장 총격과 800만 명 시위, 미국이 흔들린다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는 무사히 피신했고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같은 봄 미국 50개 주에서는 8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트럼프 2기 집권 1년, 미국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백악관 만찬장 총격 사건 (이미지 자리: 25일 워싱턴DC 힐튼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현장)

칼텍 출신 31세 교사가 총을 들고 보안검색대로 돌진했다

용의자는 캘리포니아주 토런스 출신의 콜 토머스 앨런(31)이다. 평범한 이공계 엘리트다. 2017년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기계공학 학사를 받았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주립대 도밍게즈힐스 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마쳤다. 시험 준비 학원 C2 에듀케이션에서 시간제 교사로 일했다. 2024년 12월에는 같은 학원에서 ‘이달의 교사’로 뽑혔다. 인디 게임 개발자이기도 했다. 스팀에서 ‘보어돔’이라는 게임을 1.99달러에 팔았다.

정치 성향은 진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미 연방선거위원회 기록에 따르면 그는 2024년 10월 카멀라 해리스 캠프에 25달러를 기부했다. 범행 당시 그는 산탄총과 권총, 여러 자루의 칼을 소지하고 있었다. 워싱턴DC 힐튼호텔 만찬장 보안검색대로 돌진해 비밀경호국 요원에게 발포했다. 요원은 보호 장비 덕에 다치지 않았다. 만찬장에는 트럼프 부부와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이 앉아 있었다.

수사 당국은 단독 범행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앨런은 수사 과정에서 “행정부 관계자들을 쏴 죽이려 했다”고 진술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외로운 늑대”로 칭했다. 첫 공판은 27일 열린다.

같은 봄 50개 주, 800만 명이 “왕은 없다”를 외쳤다

총격은 진공 상태에서 터진 일이 아니다. 한 달 전인 3월 28일 미국 전역에서 ‘노킹스(No Kings)’ 3차 시위가 열렸다. 50개 주 3,300곳 이상에서 약 800만 명이 모였다. 같은 해 10월 2차 시위(약 700만 명)보다 100만 명이 더 거리에 나왔다. 일부 매체는 900만 명이 참여했다고 집계했다. 미국 단일 시위 사상 최대 규모다.

노킹스 시위 미국 전역 (이미지 자리: 노 킹스 시위 행진 장면)

노킹스 시위 회차별 비교

시위의 도화선은 미국·이란 전쟁이다. 트럼프는 대선 때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미군 사상자가 늘고 있다. 휘발유와 식료품 가격은 치솟았다. 관세 청구서는 부메랑처럼 미국 가계로 돌아왔다.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마저 일부 등을 돌리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시위는 켄터키 셸비빌과 텍사스 미들랜드 같은 공화당 텃밭에서도 열렸다. 영하 6도의 알래스카에서도 시민들이 모였다.

그런데 미국은 왜 탄핵으로 가지 못하나

여기서 한국 독자에게 의문이 생긴다. 800만 명이 거리에 나섰는데 왜 탄핵 얘기는 들리지 않을까. 답은 제도에 있다. 미국 헌법은 탄핵을 의도적으로 어렵게 설계했다. 정치적 보복으로 탄핵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미 탄핵 절차 비교표

미국 탄핵은 양원 표결 구조다. 하원이 단순 다수결로 소추한다. 그다음 상원이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파면을 의결해야 한다. 상원 100석 중 67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국 역사상 이 문턱을 넘은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다. 앤드루 존슨도, 빌 클린턴도, 트럼프 본인의 두 차례 탄핵소추도 모두 상원에서 막혔다. 워터게이트 사태의 닉슨은 탄핵 직전 스스로 사임했다.

한국은 다르다. 국회가 단원제다. 재적 3분의 2가 찬성하면 소추가 끝난다. 그다음 헌법재판소가 법리로 심판한다. 재판관 9명 중 6명이 동의하면 파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렇게 파면됐다. 미국은 심판이 정치인 손에 맡겨진다. 한국은 법관 손에 맡겨진다. 이 한 줄의 차이가 결과를 가른다. 게다가 미국은 소추 의결만으로는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한국은 소추 의결 즉시 권한이 정지된다. 미국에서 탄핵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치 게임’에 가깝고, 한국에서는 ‘단기간의 사법 절차’에 가깝다.

상·하원 의석 분포도 결정적이다. 트럼프 2기에서도 공화당이 양원을 잡고 있다. 민주당이 소추안을 발의하기조차 어렵다. 설사 하원을 통과해도 상원 67표 벽은 사실상 통과 불가다. 그래서 미국 시위대는 탄핵을 외치는 대신 “트럼프는 물러나야 한다”고 외친다. 거리의 압박으로 다음 중간선거에 영향을 주는 쪽을 택한 셈이다.

이방카·쿠슈너가 백악관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

또 다른 의문이 있다. 미국에는 친족등용금지법이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1기 때 맏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모두 백악관에 들어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방카와 쿠슈너 백악관 보좌관 (이미지 자리: 이방카와 쿠슈너 백악관 근무 장면)

미 연방법 3110조는 1967년 린든 존슨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 ‘공직자는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친·인척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앉힌 사건이 발단이었다. 그런데 트럼프 측은 이 법의 적용 범위를 좁게 해석했다. 백악관 보좌관직은 ‘행정부 임명’이 아니라 대통령 직속 자문직이라는 논리다. 법무부 법률자문국이 이 해석을 사실상 추인했다. 결과적으로 친족등용금지법은 무력화됐다.

미국은 능력주의의 나라로 불린다. 그런데도 정치 명문가의 영향력은 강하다. 미 상원의원 100명 중 약 3분의 1이 가족이나 친척의 공직 경험을 가진 집안 출신이라고 한다. 클린턴 가문, 부시 가문, 케네디 가문이 대표 사례다. 한국식 잣대로는 ‘족벌정치’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선거를 통한 검증을 거치면 정치 가문 자체는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문제는 ‘선출되지 않은 가족’이 권력을 쥐는 경우다. 트럼프 1기의 이방카·쿠슈너 임명이 그 선을 건드렸다.

미국식 견제는 왜 한국과 다른가

핵심 차이는 또 있다. 한국은 헌법재판소라는 사법 기관이 권력을 직접 멈출 수 있다. 미국은 그런 장치가 없다. 연방대법원이 따로 탄핵을 제기할 수 없다. 견제는 결국 의회 표결과 다음 선거, 그리고 거리의 시민에게 맡겨진다. 800만 명 시위가 의미를 갖는 이유다. 미국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의 ‘3.5%의 법칙’도 회자된다. 전체 인구의 3.5%가 비폭력 저항에 참여하면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경험칙이다. 미국 인구 3억 4천만 기준 약 1,200만 명이 그 선이다. 800만이라는 숫자는 그 문턱에 한 발짝 다가선 규모다.

총격은 거리의 분노가 일부 개인의 폭력으로 새어 나간 사례로 읽힌다. 트럼프 본인은 용의자를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분노의 토양 자체가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가 1차 분기점이다. 공화당 텃밭에서까지 시위대가 모인 것은 의회 지형 변동을 시사한다. 의회 균형이 바뀌면 그제야 탄핵 카드가 현실적 압박 수단이 된다. 한국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단숨에 정권을 끝낼 수 있는 나라라면, 미국은 거리의 시간과 선거의 시간이 길게 누적돼야 정권이 흔들리는 나라다. 트럼프 행정부가 마주한 진짜 시계는 법정이 아니라 11월 투표함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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