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대표 징역 4년, 중대재해처벌법은 왜 작동하지 않는가

23명이 숨진 아리셀 화재 참사의 항소심이 박순관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1년 감형의 배경과 중대재해처벌법의 구조적 한계를 짚는다.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박순관 대표의 형량을 징역 15년에서 4년으로 대폭 낮췄다. 2026년 4월 22일 수원고법 형사1부가 선고한 이 판결은 유족의 울부짖음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의 실효성 논란을 다시 점화했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이 정도 규모의 사건에서 징역 4년이 나오면 과연 중처법이 앞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사실상 중처법이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 지적했다.
사고는 예고돼 있었다
수원남부경찰서로 들어서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 (2024.08.28)
검찰은 박 대표와 그의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이 생산 편의를 위해 방화구획 벽을 임의로 해체하고, 대피경로에 가벽을 설치했으며, 비용절감을 위해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파견받아 안전교육 없이 고위험 전지 생산공정에 투입했다고 봤다. 더 결정적인 사실이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고 이틀 전 선행 폭발 등 전조 증상이 있었음에도 위험성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공정을 계속했다”며 “후속공정 중단이나 화재·폭발 시 매뉴얼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하기만 했어도 막을 수 있던 참사”라고 판시했다. 재판부 스스로 예방 가능한 참사였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형량은 70% 이상 깎였다.
이 사건의 주요 피고인별 1심과 항소심 선고 결과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합의가 곧 감형’이라는 공식의 문제
항소심이 감형의 핵심 근거로 든 것은 유족 전원과의 합의였다. 재판부는 “일부 유족이 처벌을 탄원하고 있으나 이를 이유로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면 피고인이 피해 회복에 소극적이거나 포기하게 만들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워 가해자 보호에 나선 셈이다.
이 논리가 위험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가 2022년 1월 중처법 시행 이후 2025년 9월까지 유죄 판결이 내려진 자연인 피고인 70명을 분석한 결과, 실형은 6건(8.57%)에 불과했다. 반면 집행유예는 61건(87.14%)으로, 이는 일반 형사사건의 집행유예율(36.5%)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유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 70명 중 69명(98.6%)은 유족과 합의한 사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양형 흐름이 기업이 사고 예방에 투자하는 대신 사고 발생 후 합의 비용에 더 투자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리 죽지 말고 죽은 뒤에 돈으로 해결하라는 신호를 사법부가 발신하는 셈이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형사14부도 이미 이 문제를 직시했었다. 1심 재판부는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합의를 하면 기업이 선처를 받는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산재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유족과의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했다. 항소심은 그 1심의 경고를 뒤집었다.
법 조항의 구조적 허점
감형은 단순히 재판부의 온정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처법 자체의 설계가 책임을 희석시키는 구조를 내포한다.
첫째, 법정 양형기준이 없다. 중처법은 제6조에서 사망 사고 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지만, 상한 규정이 없어 법관 재량이 과도하게 넓다. 중처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의 양형기준도 정립되지 않아, 선고되는 판결 하나하나가 후속 사건의 유·무죄 및 양형 판단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그 기준 공백을 ‘관대함’ 방향으로 채워버렸다.
둘째, ‘경영책임자’ 개념의 모호성이 면탈 경로를 열어준다. 중처법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지만(제4조), ‘실질적 지배·운영·관리’는 포괄적인 용어로, 법령에는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이 제시돼 있지 않다. 아리셀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박 대표가 아들에게 업무를 맡긴 이유에는 경영상 판단이 있었다”며 박 대표 책임을 경감한 것은 이 허점을 그대로 활용한 논리다. 경영권을 자녀에게 위임하면 책임도 위임된다는 해석이 성립한다면, 사주 일가의 법적 방어 전략으로 중처법은 무력화된다.
셋째, 의무 조항 자체가 추상적이어서 인과관계 증명이 어렵다. 중처법 제4조가 규정하는 의무의 상당수는 ‘종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마련하라’, ‘관리감독자의 업무수행을 평가하는 절차를 마련하라’는 식의 절차적 의무다. 위반 여부를 입증하기가 산업안전보건법상 구체적 행동 의무보다 훨씬 어렵다. 재판부도 이 점을 활용해 “안전조치를 완전히 방치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논리를 구성했다.
넷째, 항소심은 층별 비상구 설치 의무조차 부정했다. 재판부는 “안전보건규칙 제17조는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과 그 건축물 자체에 비상구를 설치할 것을 규정할 뿐 층별로 비상구를 설치하라고 규정하지 않는다”며 공장 3동 2층에 비상구 설치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23명이 대피하지 못하고 숨진 현장에 비상구가 없었어도 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중처법 개혁 없이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이 판결이 남기는 가장 위험한 유산은 ‘선례’다. 항소심이 합의를 사실상 최대 감형 요소로 인정한 이상, 앞으로 기업들은 사고 예방이 아닌 사고 후 배상 비용 최소화에 법무적 역량을 집중할 유인이 생긴다. 법학자들은 “양형의 중심축은 유족과의 합의가 아니라 안전보건관리체계 개선, 위험성평가 이력, 전문가 검증 등 재발방지와 안전시스템 개선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하며, 장기적으로는 법인 자체를 행위자로 보고 법인 해산이나 영업정지 등의 처벌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예방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법원은 사후 배상을 이유로 처벌을 면제해준다. 아리셀 항소심은 그 역설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대법원이 이 사건 상고심에서 어떤 기준을 제시하느냐는, 중처법이 진짜 안전 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23명의 죽음이 단 4년으로 계산된 이 판결 앞에서, 유족이 법정에서 외친 “이게 도대체 무슨 법이냐”는 질문은 사법부가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